천년고찰 마곡사를 품은 공주 태화산(활인봉-나발봉) 솔바람길 산행..
맑고 조금은 포근한 날씨의 목요일 아침 7시50분, 말바우시장에서 광주뉴서석산악회 버스에 탑승한다.
8시10분, 문예회관을 출발한 버스는 8시50분, 백양사휴게소에서 뜨근한 국물과 찰밥의 아침식사를 하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린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당진-영덕산 고속도로를 타고 마곡사IC를 빠져나온 버스는 629번 지방도를 따라 마곡온천에 도착한다.
10시45분, 공사가 중단된 마곡온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물한이고개에 올라 우측 할인봉으 향한다.
잠시 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정자쉼터가 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할인봉에 올라선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면 샘골갈림길을 지나 나발봉으로 향한다.
묘역 뒤편으로 이어지는 나발봉 가는 길은 찾기 힘들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나발봉에 올라서고 건너편 무명봉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온다.
잠시 오르면 정자가 있는 능선봉, 이곳에 나발봉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정자쉼터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능선으로 내려서 솔바람길을 따라 마곡사에 도착한다.
마곡사 경내를 둘러보고 다시 데크길과 차도를 따라 주차장에 내려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고 포근한 날씨였으나 오후에는 싸늘한 바람과 함께 날이 흐려졌지만 오늘도 기분좋은 산행길이었다.
○ 산행일자 : 2019년 3월 14일(목)
○ 기상상황 : 맑은 후 흐림(맑고 포근한 봄날씨에 미세먼지도 없어 조망이 트임, 오후에는 흐림 2~12℃)
○ 산행인원 : 광주뉴서석산악회 41명 - 회비 25,000원
○ 산행코스 : 마곡온천~물한이고개~활인봉~샘골갈림길~나발봉~팔각정~문화연수원 갈림길~마곡사~구암주차장(충남 공주)
○ 거리 및 소요시간 : 9.87km(트랭글GPS), 3시간45분소요
마곡온천(10:45)~물한이고개(11:00)~385m봉(11:15)~활인봉(11:25~30)~샘골갈림길(11:50)~나발봉 갈림길(12:050~나발봉(12:12~15)~415봉(12:20)~팔각정(12:35~13:05)~한국문화연수원 갈림길(13:25)~군왕대 갈림길(13:35)~마곡사(13:45~14:15)~매표소(14:25)~마곡사 주차장(14:30)
○ 교통상황
- 말바우시장(07:45~50)~문예회관(08:10)~호남고속~천안-논산고속~당진-영덕고속-마곡사IC~629지방도~마곡온천(10:40)
- 마곡사주차장(16:00)~마곡사IC~당진-영덕고속~천안-논산고속~호남고속~여산휴게소~문예회관(18:40)~말바우시장(19:00)
○ 주요봉우리 : 활인봉(423m), 나발봉(417m)
○ 산행지 소개
공주시 사곡면 북부에 위치한 태화산(泰華山 416.7m)은 남북으로 철승산에서 국수봉과 능선을 함께하고 있다.
마곡사가 위치한 사곡면은 공주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태화산, 동쪽에는 무성산, 서쪽에 철승산(411.2m) 등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다.
천년고찰 마곡사(麻谷寺)는 이 사곡면에 있는 산들중 태화산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전란을 피할수 있는 십승지(十勝地)로 마곡사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마(麻)가 많이 재배되던 골짜기(谷)라하여 마곡(麻谷)이라 부르던 곳에 있는 절(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또한,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이 절을 재건하고 법문을 할 때 설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꽉 찬 모습이 마치 삼밭에 삼(麻)이 들어선 듯 빼곡하다하여 마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태화산 중턱에 마곡사를 둘러싸고 빼곡히 들어찬 송림은 하늘을 가리고 그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디 맑은 청수를 마곡사 한 복판으로 흘러내려간다.
이 절의 기둥은 둘레가 2m가 넘는 싸리나무로 되어 있는데 모두 반들반들하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이 기둥을 안아 봤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일이 없다면 지옥으로 보내고, 안아본 사람은 극락 세계로 보낸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몇 번이고 이 기둥을 안아 보았기 때문이다.
적송의 사이를 따라 마곡사를 둘러싸고 있는 태화산의 능선에 개설된 등산로의 길이는 5km에 달한다.
마곡사 대웅전앞 은적암 입구를 기점으로 하여 해발 423m의 활인봉, 417m의 나발봉을 따라마곡사 경내를 끼고 한바퀴 도는 이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어린이와 노인등노약자가 등산하기에도 적당하다.
활인봉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생명수 샘터가 위치해 있으며 사람에게 기와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송림욕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된다는 적송림은 등산객들에게 건강나무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택리지(擇里志)나 정감록(鄭鑑錄)에 기록되어 있고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6.25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곡사가 깃들어 있는 태화산 자락에는 일명 '백범 명상길'이라고 불리는 ‘마곡사 솔바람길’이 조성되었다.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은신하던 당시 걸었던 길로서 마곡사 솔바람길은 모두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1코스는 마곡사에서 출발해 김구 선생 삭발터와 군왕대를 지나 마곡사로 되돌아오는 3km 코스이다.
2코스는 명상산책길로 주차장에서 출발해 천연송림욕장, 백련암, 활인봉, 생골마을을 거쳐 마곡사로 내려오는 5km코스이다.
3코스는 소나무숲길로 천연송림욕장, 백련암, 활인봉, 나발봉, 전통불교문화원, 군왕대를 거쳐 마곡사에 이르는 10km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으며, 인상적인 소나무 숲길과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
10시45분, 마곡온천(폐업) 부지 앞 공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
억새가 무성한 임도를 따라가면..
물한이고개에 이른다.
좌측으로는 철승산 깃대봉(411.2m)로 이어지고 우측은 활인봉으로 오른다..
우측으로 깎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 후 가파른 오르막이 한참동안 계속된다..
가파르게 올라선 385m봉..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태화산의 최고봉인 활인봉(423m)에 올라선다..
우측은 마곡사로 내려서고, 나발봉까지는 2km..
활인봉의 정자 쉼터..
오늘도 함께 한 선배님과..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실질적인 태화산 활인봉이다..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샘골 갈림길, 우측은 마곡사에서 오르는 길로 솔바람길 2코스이기도 하다..
잠시 오르면 할미바위에서 바라본 공주시 유구읍 시가지..
묘역이 있는 나발봉 갈림길, 뒤편으로 올라야 하나 우측으로 표시되어 있다..
나발봉 정상..
삼각점(예산 322)이 있다..
표지석은 없고 삼각점 표지판에 나발봉이라고 쓰여있다..
건너편의 414m봉꺼지 왕복한다..
다시 묘역으로 되돌아 나온다..
부드러운 송림길을 따라간다..
잠시 송림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정자쉼터가 있다..
가야할 길은 1코스로 이어지는 길이다..
정자에 나발봉이란 표지판을 세워 두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선다..
건너편 산중턱의 무위암이 바라보인다..
적송 숲길을 따라 내려선다..
어느 여인의 한가로운 풍경..
한국문화연수원 갈림길에서 우측 마곡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부드러운 산허리길, 마곡사 솔바람길 1코스이다..
군왕대 갈림길에서 삭발바위 방향으로 내려선다..
마곡사 입구의 솔바람길 안내도..
템플스테이를 위한 건물들..
마곡사 솔바람길..
지금은 이른 봄이라 삭막하지만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봄에는 마곡사요, 가을에는 갑사라는 얘기다.
그만큼 마곡사의 봄 풍경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 마곡사 경내로 들어선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통일신라의 서예가 김생(金生)의 필적이라고 전해진다..
마곡사 경내를 벗어난다..
데크길을 따라 내려선다..
매표소를 지나고..
일주문을 지난다..
상가지대에 있는 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태화산 등산길에 만난 마곡사의 풍경..
한국불교의 거목, 공주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마곡사는 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서 사찰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으로 신라 선덕여왕 9년(640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대사가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신라 승려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이후 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
(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효종 2년(1651년)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이 절은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마곡사는 임진왜란후 중창불사로 전각을 지어 번성하던 정조 6년(1782년)에 대법당을 비롯한 1,050여간이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가장 먼저 대법당이 중건되는데 이 대법당은 본존을 모시는 기능 외에 사찰 전체가 감당해야 할 상당 부분의 예불의식을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도 본존에 따른 불전의 명칭 대신 대법당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그 대법당이 바로 이 대광보전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를 사이에 두고 대웅전(보물 제801호)과 영산전(보물 제800호), 천장 무늬가 아름다운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 해탈문·천왕문, 16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 명부전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尋劍堂)이 ㄷ자형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碧眼堂)과 매화당(梅花堂)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염화당(拈花堂)·연화당(蓮華堂)·매화당(梅花堂) 등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밖에도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권1(보물 제269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권6(보물
제270호),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석가모니 괘불탱(보물 제1260호), 마곡사 동제 은입사향로(충남 유형문화재 제20호),
마곡사 동종(충남 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이중 5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風磨洞多寶塔)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 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무너져 탑 안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오래이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전국민의 3일 기근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국·인도·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 나갔다고 한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부용암·북가섭암·토굴암·백련암·영은암·대원암·은적암 등이 있다.
마곡사가 자리 잡은 태화산이 태극형을 띠고 있어 택리지, 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사찰을 끼고 흘러가는 태화천 역시 태극의 형상으로 휘어지며 흘러간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충남 유형문화재로 제185호로 지정된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 석가모니불, 아미타여래상,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 있는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에 왼손은 무릎에서 수평으로 뉘어 두 번째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구부렸고,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덮은 형식의 편단우견(偏袒右肩)이다.
아미타여래상은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약사불은 반대의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였으나 약함은 놓여 있지 않다.
양쪽의 여래상들은 편삼을 입었다.
보물 제802호로 지정된 마곡사 대광보전..
뒤편의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중심 불전이며, 1782년 발생한 대화재로 불타버렸지만 1785년 재건되었다.
앞에는 보물 제799호인 오층석탑이 서있다.
백범 김구선생의 은거지인 백범당..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하던 중 탈옥하여 이곳에 은신하였다고 한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64호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을 미롯한 시왕이 모셔져 있다..
산신각
충남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된 해탈문..
마곡사의 두번째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안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된 해탈문..
마곡사의 두번째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양편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및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
'영산전' 현판은 세조가 직접 써서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한다..
마곡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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