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0년 7월 1일(목)
○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죽곡면 봉두산(동리산)
○ 태안사 소개
태안사(泰安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써 대안사(大安寺)라고도 한다.『동리산태안사사적(桐裏山泰安寺事蹟)』에 의하면
경덕왕 원년(742) 2월에 이름 모를 신승 세 분이 개창하고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뒤 혜철선사가 당나라 서당지장에게 법을 전수받고
문성왕 원년(839)에 귀국한 후 이곳에 신라하대 선문의 동리산파를 이룬 것은 문성왕 9년(847)이다.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중심사찰로 삼았다
이때의 가람 규모를 보면 건물 총 40여 동에 110칸이었으며 법당에는 높이 1.4m되는 약사여래철불좌상이 봉안되었던 것 같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 등 전남 대부분의 사찰이 이 절의 말사였으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수선(修禪)의 본사로 독립됨에 따라
사세가 축소되었다.
고종10년(1223)에는 당시 집권자인 최우가 왕지를 받들어 중건하였으며, 조선시대는 초기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다가 숙종 10년
(1684)에 주지 각현이 창고를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풍수지리설의 원조인 도선국사도 이곳 태안사에서 20세때부터 23세까지 혜철에게 가르침을 받고 크게 깨쳤다.
특히 조선 초기는 태종의 둘째아들 효녕대군(1396∼1486)이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이 있기도 하다.
태안사는 한국전쟁 때 많은 건물이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그 후에 복원된 것이다.
경내에는 혜철선사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275호), 승무를 출 때 사용하던 태안사대바라(보물 제956호), 태안사동종(보물 제1349호), 태안사일주문
(전남 유형문화재 제83호), 태안사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이 있다.
태안사 일주문(一柱門)...
937년 광자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그 후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 숙종 9년(1683)에 각현선사가 다시 지은 후,
1917년에 영월(映月)선사가 중수하고 1980년에 또 다시 보수하였다고 한다...
기단은 외벌대를 사용했고,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했으며, 기둥은 하부가 두껍고 상부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굵은 기둥 2개 외에 4개의 기둥이 더 사용되었는데 매우 세장하기 때문에 이것을 구조적인 기둥이라 하기는 보다는 상부의 지붕과
공포를 지지하는 보조기둥이다. 기둥상부에는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다포의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외4출목을 사용했고
쇠서의 모양은 4제공까지 앙서를 사용했고, 독특하게 5제공은 앙서와 수서를 한 부재에 장식했다.
지붕은 맞배지붕을 사용했고 측면은 풍판으로 가렸다...
전면에는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라는 커다란 현판을 걸었고, 배면에는 “봉황문(鳳凰門)”이라고 작게 현판을 걸었다.
전체적으로 하부의 가구에 비해 상부의 공포가 매우 비대한 가분수형의 건축물이다...
태안사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5간, 측면 3간의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기단은 말끔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바른층으로 쌓아올렸고 중앙에 기단을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했다.
다듬은 초석을 사용했는데 원형 평면에 쇠시리를 조각하였고 초석 상부의 기둥은 모두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중앙에 위치한 4개의 기둥 상부에 용머리를 조각해 외부로 돌출시켰고, 기둥과 기둥은 창방을 이용해 결구하고 있다.
그 상부에 평방을 얹어 다포공포를 짜 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을 이루고 있는 다포를 사용했다.
천장은 우물천장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반자틀에는 연꽃무늬를 단청했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중앙어간에는 4짝 여닫이문을 매달아 놓았고, 그 외 4간은 2짝 여닫이문을 사용했으며, 창호는 소슬빗꽃살을 사용해 조성했다...
대웅전에 그려진 벽화는 내부의 경우, 고주 뒤편 배면 벽면에는 태안사의 조사인 혜철국사와 광자대사의 영정을 모셨고,
그 외 좌우 벽면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영정을 그려 놓았다. 또한 측면과 배면 외벽에는 석가모니의 본생도를 그려 장엄하다..
태안사지 편사에 의하면 광자대사 당시 태안사의 중심 건물은 금당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금당의 당주 또한 약사여래철조좌상(藥師如來鐵造坐像)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태안사의 중심 건물은 대웅전이라 현판을 걸었고,
그 예불 대상 또한 석가모니불로 바뀌어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대웅전은 6.25전쟁때 화재로 사라졌으며, 지금의 건물은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阿彌陀 三尊佛)...
대웅전의 본존불로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모셨다.
또한, 좌우협시보살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은 무한한 광명과 수명을 지닌 부처라는 뜻으로 무량수불, 미타불로 불리는 부처로 서방의 극락을 관장한다고 한다.
후불벽 또한 본존불과 어울리게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극락회상도를 그려 놓았다.
왼쪽 벽면에는 지장탱화를 제작해 걸어놓았고, 오른쪽 벽면에는 신중탱화가 걸려있는데, 모두 화기가 확인되지 않는다...
태안사 약사전(藥師殿)...
대웅전 우측에 따로 높은 2단의 축대를 조성한 대지에 근래에 새로 지은 건축물이다...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3간인데 어간이 협간에 비해 매우 크게 간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면 비례에 있어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측면은 3간으로 기둥배치가 너무 촘촘한 느낌을 주고, 기단은 낮게 구성했는데 막돌초석을 사용해 마감했다.
다듬은돌 초석에 연꽃무늬를 조각해서 매우 화려하며, 기둥은 흘림을 주지 않은 원통형을 사용했다.
어간의 양쪽 기둥상부에는 용을 조각해 끼워 넣었고,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 불단은 조성되어 있으나, 따로 닫집은 만들어져 있지 않다.
불단위에는 한 폭의 유화가 모셔져 있는데, 임창수(林昶壽) 화백의 그림으로 약사여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전통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에 걸맞게 탱화를 번안해 그려 봉안하였다..
보물 제273호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이 탑은 태안사의 개산조사라 할 수 있는 혜철(慧徹)대사의 부도이다. 적인선사 혜철은 신라 원성왕 1년(785년)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년)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도는 적인선사가 입적한 86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는 현 태안사의 가장 높은 곳에 마련한 대지에 있으며, 부도 옆에 탑비가 부도를 바라보면서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부도 앞에는 계단을 마련하고 배알문(拜謁門)이라는 현판을 단 문을 두어 부도가 놓인 대지의 격을 높이고 있다.
부도는 지면에 바로 놓인 것이 아니라 기단을 마련한 위에 모셔졌다.
기단은 원래 가구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우주가 제 위치에 있지 않는 등, 많은 부분이 교란되어 있다.
또한 기단 주변으로 초석들이 위치하고 있어, 부도를 중심으로 한 부도전이 꾸며졌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기단 정면에 위치한 갑석의 형태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계단을 설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는 지대석 위에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 상륜부를 두어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팔각형평면을 기본으로 구성한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부도 형식을 지니고 있다...
부도를 바라보며 옆에 세워진 비석은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로써 그의 일대기와 사상을 담은 탑비이다.
이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와 시대 상황 및 선사의 일대기를 알 수 있다. 탑비는 귀부와 비신, 이수로 구성되는데 적인선사탑비는 비신이
결실되어 없어졌으며, 현재 사내에 전해 내려오는 비문을 가지고 다시 복원해 놓았다...
이 탑은 신라말기에 건립되기 시작한 부도의 초기 작품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거대한 것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조형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조각에 있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있어,
수수하면서도 당당한 초기 한국 부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배알문에서 바라본 경내풍경...
선원(禪院)..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ㄱ"자 건물로, 화두를 참구하시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경내풍경..
경내풍경...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태안사 일주문 오른편 부도밭에 위치하고 있는 고려시대 초기 광자대사의 부도탑이다.
광자대사는 태안사의 2대 조사(祖師)로, 경문왕 4년(864)에 출생하여 혜종 2년(945) 82세로 입적하였다.
자는 법신(法身)이고 법명은 윤다(允多)인데, 부도는 광자대사가 입적한 지 5년이 지난 고려 광종 원년(950년)에 세워졌다.
이 부도는 지대석 위에 하대석과 중대석 및 상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을 두고,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 및 상륜을 올린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팔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지대석의 가장 아래 단을 상부와 틀어지게 구성하였음이 특징이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유행하였던 부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예에 속한다.
지대석은 팔각형 평면으로 상부에 세 단의 쇠시리를 두어 기단받침으로 삼고 있다.
하대석은 상대석과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상중하 세 단으로 구성했다.
중대석은 그 높이가 비교적 낮은 편으로 각 면에 상하는 직선, 양쪽은 반원을 이루는 윤곽을 만든 속에 안상을 새겼다.
상대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지만 형태상 상하 두 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래는 앙련을 새긴 부분으로 아래에 3단의 쇠시리를 두어
받침으로 삼았으며, 하대석의 복련과 대칭을 이룬다. 기단부는 이 시기에 조영된 다른 부도에 비해 장식적인 내용이 많이 약화되었다.
탑신은 팔각형 평면의 목조건축을 표현하고 있으나 조각 수법이 경직되고 건축적 표현도 형식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겼고, 각 면의 상하에는 기둥 상하를 수평으로 연결하는 창방과 하인방을 표현하였다...
옥개석은 다른 모든 부도들이 그러한 것처럼 모임지붕을 표현해 놓았다.
상륜부는 복발(覆鉢), 2개의 보륜(寶輪), 보개(寶蓋), 보주(寶珠)로 구성되어 있고, 조륜청정탑에 비해 과장된 크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도는 같은 태안사에 있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과는 시기적으로 100년의 차이가 있다.
그러한 시간의 차이만큼이나 두 부도는 조형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조륜청정탑이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를 바탕으로
소박한 조각표현을 하고 있는 반면에 광자대사탑은 전체적인 비례보다 그 장식적 표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적인선사탑은 목조건축의 내용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번안하고 있는 반면,
광자대사탑은 목조건축의 표현이 형식적인 것으로 변하면서 사실성이 결여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광자대사비(廣慈大師碑)...
광자대사의 일대기를 적은 광자대사비는 광자대사탑 바로 옆에 건립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도괴되어 옆에 별도로 세워놓았는데, 훼손이 심하여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금석문 관련 문헌에서 비문에 대해 기록해 놓고 잇어서 비문의 내용은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41년 펴낸 사적기에서 의하면 “1928년 중건 당시 광자대사비의 이수를 옮겨와 적인 선사비의 이수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적인선사탑비의 이수와 광자대사탑비의 이수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귀부는 각각 세부에 수많은 조각 장식을 하고, 머리의 표현에 있어서 매우 사실적이며, 목에 그려진 주름 무늬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비를 받치는 받침 부분에는 구름무늬를 빼곡히 조각해 두었다.
등에는 아직도 거북의 무늬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고, 꼬리는 하늘로 말려 있도록 조각되었다.
이수의 한 중앙에는 가릉빈가를 표시한 듯한 새 몸통이 조각되어 있으나, 얼굴부분은 사라져서 현재는 없다.
새 모양 조각 하부에는 이 탑비의 주인공 이름이 적혀있었을 것이나, 많이 파괴되어 있어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
또 사방 모서리 부분에는 각각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이수의 정상에는 중앙과 좌우로 3개의 보주를 올려놓았다.
배면에는 구름 무늬로 조각을 했으며, 곳곳에 용의 몸통을 조각해 놓아 각 모서리에 조각된 용과 조화를 꾀하였다...
태안사 삼층석탑(三層石塔)....
원래는 광자대사 부도 옆에 있었던 것을 일주문 왼쪽에 넓게 연못을 만들고 그 중앙에 옮겨 새롭게 조성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의 한쪽 면과 탑신의 1층 옥개석과 2, 3층의 탑신 부위가 없어진 상태였다고 하는데,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이 복원하여 만들었다.
현재 부도밭에는 석탑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옥개석을 하나 볼 수 있는데, 이 석탑에 사용되었던 부재로 추정된다..
기단 아래에는 원래 탑에 사용되지 않았던 방형의 지대석을 3단 놓아 원래 탑에 비해 높이가 높아졌다.
기단은 가구식 기단을 사용하고 있다. 탑신도 역시 네면 각 모서리에 기둥형태를 조각해 두었다.
2층 옥개석은 많은 부분이 깨져 있으며 각층의 탑신석도 많은 부분이 깨져있다.
3층 옥개석과 상륜 부위는 신재로 교체해 복원한 듯 돌의 재질이 달랐다. 다만 상륜부 중 노반은 원래 탑의 부재로 생각된다...
이 탑은 기단과 옥개석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양식을 계승한 고려초의 탑으로 추정되는데, 전체적으로 안정된 체감을 갖고 있다...
태안사 능파각(凌波閣)..
문성왕 12년(850)에 혜철선사가 처음 지었고, 고려 태조 24년(941년) 광자대사가 수리했다고 한다.
그 뒤 파손되었던 것을 영조 43년(1767년)에 다시 지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능파각은 정면 3간, 측면 1간의 방형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계곡의 양쪽에 석축을 쌓아 이 위에 굵은 보를 가로질러 걸치고 직각방향으로 또 다른 보를 가로질러 건물의 바닥 기본틀을 형성하였다.
이 틀 상부에 굵은 목재를 다시 건너질러 이를 상부 기둥의 기초로 사용하고, 이 위에 기둥을 올렸고 상부는 창방으로 결구했다.
공포는 기둥상부에만 사용한 주심포식을 사용했고, 공포의 출목은 외1출목이며 내부는 출목 없이 보아지로 마감했다.
태안사 사찰 영역을 진입하기 이전의 다리 역할을 하는 하나의 누각식 교량, 능파각이라는 이름은 계곡의 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해 지었다고 한다.
송광사, 선암사, 흥국사를 비롯해 이 지역 많은 사찰들이 주영역에 진입하기 전에 개울을 건너는 방식으로 사찰의 진입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사찰의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에 관한 모든 일들을 물에 씻으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일종의 관정의식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돌로 홍예를 쌓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은 다리로는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또한 일주문과 더불어 6.25전쟁 중에도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태안사의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다...
산내암자 성공전(聖供殿)...
< 경찰충혼탑 >
1950년8월6일 새벽, 북한군이 태안사 작전지휘본부를 기습공격, 치열한 전투끝에 경찰관49명이 이곳 태안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는바,
전사 경찰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참전동지들의 성금과 국가의 지원으로 1985년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매년 8. 6 태안사작전 전사 경찰관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조태일(趙泰一) 시문학기념관]
조태일 시인(1941~1999)은 곡성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64년 경향시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선박>의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69년 시전문지 [시인]을 창간하였고 <식칼론>을 비롯하여 여덟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문학기념관」과 「시집전시관」은 문단에 길이 남을 민족시인 조태일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예비 문학도들의 창작공간 마련을
위하여 2003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태안사를 찾는 관광객은 물론 전국의 많은 문학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은 조태일 시인의 유품과 작품, 시인을 기리는 문학작품 등 2,00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시집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집인 최남선의 <백팔번뇌>,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등 희귀본에서 최근
작품까지 3,000여점의 시집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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